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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TUDY/멘탈케어

Keep Calm and Carry On

by T1ST0RY 2017. 12. 9.

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 창설되었다가 2차 대전 초기에 본격적으로 그 활동을 시작한 영국 정보부 (The Ministry of Information: MOI)는 주로 국내외의 홍보 업무와 선전 활동에 집중했다. 전쟁이라는 한계 상황 속에서 정부가 집중해야 할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국민을 안심시키고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일이라는 판단에서였다. 그들이 했던 수많은 일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각종 매체를 통한 프로파간다, 즉 선전활동이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포스터 제작이었다.

1939년 4월부터 시작된 포스터 고안 작업은 다양한 내부 의견을 거쳐 몇몇 공무원들에 의해 진행되어 모두 세 종류가 만들어졌는데 내용은 당시 국왕인 George 6세가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다. 그리고 몇 달 후 탄생한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‘Your Courage, Your Cheerfulness, Your Resolution Will Bring Us Victory’ 즉, ‘당신의 용기, 당신의 쾌활함, 당신의 결의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리라’였는데 약 80만 부가 제작되어 전국에 배포되었다.

욱일승천의 기세로 유럽 대륙 대부분을 국가사회주의의 깃발아래 굴복시켜 가던 나치 독일의 위협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. 하지만 그에 맞서기 위한 가장 큰 미덕은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용기와 결의이며 그 어떤 순간에도 명랑 쾌활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이 포스터는 전쟁 내내 가장 대중적인 내용의 문구로 회자되며 현재까지 그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 준 일등 공신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.

두 번째 포스터는 당시 독일군의 약진으로 매우 어두워진 전황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듯 처음 나왔던 슬로건보다 훨씬 절박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으니 ‘Freedom is in Peril, Defend It with All Your Might’, 직역하면 ‘자유가 위태롭다. 당신의 모든 힘을 다해 방어하라’는 내용이었다. 40만 부 정도 인쇄되어 전국 각지에 부착된 이 포스터는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국가적 위기에 대한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그보다 맞서 싸워야겠다는 굳은 결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영국 정보부의 고뇌의 산물이었다.

물론 이 같은 선전전과 더불어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배를 타 본 적이 없었던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거국 내각을 결성해 보수당 소속의 처칠이 수상을, 노동당 당수였던 아틀리(Attlee)가 부수상을 맡아 그들의 ‘모든 힘’을 다 해 전쟁을 이끌고 있었기에 국민 대다수가 정부에 대해 전폭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법의 ‘있는 힘’을 다 국가에 바칠 수 있었다. 그리고 마침내 그 소중한 자유를 지켜낸 것이다. 그리고 그런 이유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던 세 번째 포스터를 공개하지 않게 된 것이다.

마지막 포스터는 일종의 대국민 최후통첩과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. 그러나 그 역시 비관적이지만은 않았다. 당시 독일군이 영국을 침공할 계획으로 수립했던 Operation Sea Lion, 즉 ‘바다사자 작전’의 실행이 임박했음은 대부분이 주지하고 있던 사실이었고 그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을 때 영국 전역이 히틀러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. 하지만 제공권 장악을 전제로 했던 이 작전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다 끝내 실행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고 당연히 정반대의 상황을 상정하고 만들었던 마지막 세 번째 포스터 또한 공개되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.

그러던 것이 약 60년이 지난 2000년 어느 날, Northumberland의 한 중고 책방에서 그 마지막 포스터의 원본이 발견되었다. 워낙 엄중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다 그 내용마저 매우 호소력이 강한 덕에 금방 여기저기 소문이 나 복사를 해 가는 고객들이 많았다고 한다.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데에는 영국 왕실이 가진 해당 포스터의 지적 소유권이 50년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 문구와 문구 위의 왕실마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.

‘Keep Calm and Carry On', 이 짧은 문장이 바로 그 마지막 포스터에 담긴 슬로건이다. 오늘날 이 문구가 새겨진 수많은 옷들과 생활용품을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데 그 유래가 바로 여기에 있다. 다시 직역하면 ’침착하게 하던 일 계속하라‘는 내용의 이 글이 2000년 당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단번에 끌었던 건 나라가 망할 위기에 있어도 그를 해결하기 위해 왕실과 정권의 수뇌부가 최선을 다 할 것이니 국민들은 평정을 유지하며 일상에 충실 하라는 내용 자체가 촌철살인의 짧은 몇 마디로 표현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 불쑥 찾아 온 경제위기 때문이기도 했다.

이는 곧 영국 국민 스스로 힘든 경제난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결연한 의지로 열심히 살 것이란 다짐의 의미이기도 한데 최근 들어 1920년대 이후 최악의 경제공황을 만난 영국민들 사이에 다시 이 포스터가 회자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. 여기저기 그 내용이 새겨진 머그잔에 커피를 담아 마시는 사람들과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모자달린 후드 티에서도 똑같은 모양의 포스터를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.

 

http://m.newshankuk.com/news/content.asp?fs=&ss=&news_idx=2010042010495354088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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